― 전 세계에서 피어나는 한글의 씨앗들
요즘엔 아주 작은 뉴스 속에서도 한글을 만날 수 있다. 미국 텍사스의 공립학교에서 한글반이 생겼다는 이야기, 독일 베를린에서 세배를 배우는 아이들, 필리핀의 한 섬 마을에 세워진 한글학교까지. 언뜻 보면 지나칠 수도 있는 이야기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이면 커다란 흐름이 된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한글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태어난 곳은 달라도, 말씨는 다르더라도, 공통된 것은 딱 하나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고 조용한 교실 한편에서 시작된다.
흙 속에서 피어나는 모국어의 뿌리
캐나다 벤쿠버에 사는 지인의 아이는 평소 영어가 익숙하다. “엄마, 나 브로콜리 싫어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Mom, I hate broccoli”라고 말한다. 하지만 토요일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말마다 다니는 한글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한글을 배운다. 그 아이는 말한다. “한글은 좀 어렵지만, 쓰면 기분이 좋아요.”
부모가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단순히 언어 하나를 전수하려는 게 아니다. 뿌리와 연결된 실을 놓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한국을 떠나 수십 년을 살았어도, 자녀가 "할머니"라는 단어를 알고,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곧 가족의 언어이고, 기억의 언어이며, 정체성의 언어다.
미국 LA, 호주 시드니, 프랑스 파리에도 주말 한글학교는 존재한다. 바쁜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아이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가는 부모들. 간식으로 김밥을 싸고, 단어 카드로 퀴즈를 내며, 언제 끝날지도 모를 느린 과정을 기다린다. 그런 모습은, 이주민의 일상 속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숭고한 교육의 장면이다.
BTS가 열어준 문, 한글로 들어오는 아이들
요즘은 한글학교의 얼굴이 변하고 있다. 꼭 한국계 아이들이 아니어도, 한글을 배우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BTS 가사를 직접 읽고 싶어서요.” “한국 드라마 자막 없이 보고 싶어요.” “한식을 좋아해요.”
이유야 제각각이지만, 그 시작점은 ‘문화에 대한 흥미’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동남아시아의 국제학교, 유럽의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남미의 작은 문화원에도 한국어 수업이 생겼다. 선생님은 “안녕하세요”를 가르치고, 아이들은 “오빠”, “사랑해요”를 외운다. 때로는 잘못된 억양에 웃기도 하고, 뜻 모를 단어를 마음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이 흥미롭다. 말 하나가 문화를 열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아이들이 강제로 배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시험을 위해 억지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진짜 관심과 호기심이 이끌어낸 배움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더욱 깊고, 오래간다. 한국어가 단순히 ‘배우는 대상’이 아니라, ‘즐기는 문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글학교는 학교 그 이상이다
베를린의 한글학교에서는 매년 설날이면 교실이 전통시장처럼 변한다. 한복 입은 아이들이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고향 음식을 나누며 향수에 젖고,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놀이에 눈을 반짝인다.
그 날, 학교는 단순한 교실이 아니라 작은 한국이 된다.
한글학교는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정체성을 공유하고, 문화를 체험하며, 공동체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한글을 통해 우리는 ‘말’을 배우지만, 동시에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익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묻는다. “나는 누구지?”, “나는 왜 한국어를 배우는 걸까?” 이런 질문이 자라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한글교육의 깊은 힘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수업도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 줌, 카카오톡으로도 한국어 수업이 가능해졌다. 어떤 아이는 스웨덴에서, 또 다른 아이는 브라질에서 같은 시간에 한글을 배우고 있다. 그렇게 한글은 국경을 넘고, 시간대를 건너, 연결을 만들어낸다.
마치며: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이 만드는 미래
한글은 이제 더 이상 한국만의 문자가 아니다. 아이들이 배우고, 가르치고, 즐기며 세계 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한글을 배운다.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가 말한다.
“한글은 아름답다”고.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언어는 결국 마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이고, 그 마음이 진심일 때, 언어는 문자를 넘어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된다는 것을.
한글을 배우는 그 작은 손끝에서, 한국의 미래가 자란다.
그리고 그 미래는 지금, 전 세계 교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