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의 어느 초등학교. 조용히 교실 한 구석에 앉은 소년이 창밖을 바라본다. 구불구불한 속눈썹과 또렷한 눈매, 그리고 주변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피부색. 교사는 조용히 말한다. "그 아이는 아버지를 몰라요. 한국인이었다고만 해요." 마치 누군가의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그들은 ‘코피노(Kopino)’입니다.
오늘은 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말해 볼까 합니다.
코피노라 불리는 아이들이 있고 베트남 전쟁 혼혈인인(라이따이한) 이 있습니다.
라이따이한은 1964년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한국군 병사와 현지 베트남 여성의 결혼으로 태어난 2세를 일컬어 말합니다.
현지 말로 라이는 잡종, 따이한은 대한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코피노와 라이따이한이 단순히 혼혈 2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한국인 아버지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진짜 문제이지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실에 있는 일이니 반성하고 이에 대한 국가적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현실, 코피노의 현재
'코피노'는 "Korean"과 "Filipino"를 합성한 말로,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합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수천 명, 많게는 3만 명이 넘는다는 추정이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들은 통계 바깥에서 태어나, 제도 바깥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국적의 유무를 넘어서 사회적 차별과 빈곤, 교육 및 의료 접근의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코피노 아이들 다수는 아버지와의 연락이 단절된 상태에서 성장하며, 일부는 아버지의 이름조차 알지 못합니다. 필리핀 사회에서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많고, 한국 사회에서는 관심조차 받지 못합니다. 그들의 존재는 '낙인'으로 규정되며, 불편한 진실은 조용히 덮여갑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 남성의 무책임’으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해외 파견, 여행, 유학 등을 통해 필리핀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 그러한 접점에서 태어난 생명에 대해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국가 간 인구 이동과 문화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구조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왜 한국 국적을 갖지 못하나?
한국 국적법에 따르면,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자녀 역시 국적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국적 취득을 위해선 출생신고, 친자 확인, 아버지의 법적 동의 등이 필요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대부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국인 아버지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연락이 닿는다 해도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한, 필리핀의 법적 시스템은 출생신고나 친자 등록에 있어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며, 부의 불균형으로 인해 서류 발급 자체가 어려운 가정도 많습니다. 일부 NGO 단체에서 DNA 테스트와 법률 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한국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이상,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대응은 요원합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 아이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민’입니다. 이들을 위한 국적 취득 절차의 간소화, 법률 상담의 확대, 그리고 한국인 아버지의 정보 확보를 위한 외교적 접근 등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교육과 생계 지원 등 실질적인 삶의 질 개선 정책도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시간
2020년대 들어 몇몇 방송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코피노 문제는 재조명되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 공감대는 부족합니다. 가끔은 '부끄러운 과거'처럼 숨기고, 때로는 '남의 일'처럼 방관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이 아이들의 존재를 직시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 그들은 성장합니다. 학교 대신 거리에서, 가정 대신 고아원에서, 이름 대신 '코피노'라는 꼬리표와 함께 말이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나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야.” 그러나 질문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 아이는 누군가의 아이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 아닌가요?”
코피노 문제는 단지 외교적, 법률적 이슈가 아닌 인권의 문제이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이제는 외면이 아니라, 목소리와 손길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들이 ‘한국인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닌, 온전히 자기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